(지리) 사라고스Zaragoz
에보로 강의 가장 먼 곳에 위치한 작은 국가인 사라고스Zaragoz는 백성들에게 폭군이라 불리는 마르실리오 디아빌라Marsilio diAvila 공작에 의해 통치 받는 에스탈리아 공국이었다.
햇빛이 너무 강렬하여 땅은 빈약한 지지 기반이었기에 사라고스는 에스탈리아 국가들 중에서 가장 소국으로 여겨졌으며 공국엔 수세기 동안 디아빌라와 킥사나Quixana 가문간의 분쟁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사라고스의 불화 중인 가문들 간의 혈통들은 난잡한 결혼 관계들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늙은 공작 루피노 디아빌라Ruffino diAvila의 통치 시기에는 왕좌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유산에 의해 고통 받게 되었다. 남아있는 킥사나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왜 다른 이름들로 바꾸었든,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을 직위에 그들을 임명하는 것을 조심해야 할 것이었다.
사라고스의 강탈자들
마르실리오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로드리고 코르도바는 사라고스의 공작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성벽에서 돌들이 떨어져나가고 높은 탑은 무너졌지만 성은 여전히 서있었다.
지리
사라고스는 목초지에 둘러싸인 외로운 험준한 바위산을 중심으로 위치하였다. 농장들은 오렌지 과수원과 포도원들과 함께 북쪽의 고지대에 자리잡았으며 동물들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에보로 강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사라고스로 향하는 길의 토양은 오랫동안 홍수에 의해 쓸려나가 가시 덤불과 키 큰 풀들이 자란 수풀만이 있는 건조하고 모래 많은 땅만을 남기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농경지에서 내려와 점점 더 잔잔하고 넓어지는 강을 만나는 도로로 이어졌다. 에보로 강과 평행하여 나아가는 길에서 보면 강의 남쪽으로 넓고 평평하게 뻗어있는 땅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에보로 강의 북쪽 기슭은 나무들과 낮은 산들에 막혀있었지만, 느릿한 굽이를 따라가다 보면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지평선 일부에는 두드러지는데다 어울리지 않는 원뿔 형의 바위산이 보이게 될 것이었다.
저지대 땅들로 둘러싸인 사라고스는 풍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는데, 음유시인 오르페오는 “마치 알맞은 위치로 산들을 옮기던 어떤 신이 사고를 당해 산 하나의 봉우리가 깨져나갔고, 부주의하게 그것을 떨어트린 것 같다.”라고 묘사하였다. 바위산의 정상에는 성채가 위치했고 그 아래로는 바위투성이의 산 비탈이 몹시 가팔라 삼십 채에서 사십 채 이상의 집들이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이 서있는 읍은 낮은 벽으로 된 좁은 원 안에 둘러싸인 상태였다. 식량을 공급하는 농장들은 더 거대한 원을 형성하여 한쪽에 에보로 강의 강줄기가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거주 지역
경비병들은 게으르고 좁은 길목들에서 나는 습관적인 악취들은 다른 거주 지역들과 같았지만 변함없이 거리들은 나쁘게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그러한 구역들은 노동자들이 무리를 지어 멀리 떨어진 농지들에서 내려와 마을을 가득 채우는 축제일과 장날을 제외하곤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원형의 성벽 위에 있는 바위 산을 절반쯤 올라가면, 집들은 산 아래에 놓인 것들에 비해 위태롭게 놓여 있었다. 한 두 곳은 폐허가 되었고 망가진 탑들은 갈까마귀와 큰까마귀들의 둥지가 되어 있었다. 올라가는 좁은 도로의 폭은 상인들의 수레가 겨우 지나갈 정도였으며 바깥쪽으로 나무 난간이 세워져 있었지만 만들어진 것만큼 안전해 보이진 않았다. 만약 누군가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달려 올라가려 한다면 틀림없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질 것이고, 지나가는 주정뱅이는 떨어져 죽은 그를 쉽게 찾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 위에 사는 것은 사라고스의 귀족들이었다.
사라고스 성
성으로 접근하는 것은 도로의 가장 낮은 부분만큼 가파르진 않았다. 요새 자체는 전통적으로 각 모서리에 탑이 세워진 직사각형이었지만 그 형태는 성이 놓여 있는 바위 산의 윤곽에 속박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성벽은 올곧지 못하고 수평과 수직으로 구불구불했다. 북쪽 탑 - 고탑the High tower이라고 알려졌다 - 은 다른 탑들 위로 솟아있었으며 한편 남쪽 탑은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다.
성문을 통과한 후에도, 지나간 이들은 벽이 외성벽보다 더 평평하거나 고르게 기울어지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전통적인 설계로 일반적인 안뜰 대신에 일련의 거대하고 불규칙한 계단이 놓였다. . 각 계단들은 하나 당 둘에서 세 개의 계단참으로 이루어져, 두 개의 거대한 수직 면에는 돌 속에 파인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었다. 남동쪽 벽에 있는 문루에는 두 세 명의 문지기가 상주했으며 각 탑들에는 한 명의 보초병들이 배치되었다.
성 안에 만들어진 거주 구획들 - 마구간들을 포함하여 - 은 동쪽과 서쪽 탑 사이에 펼쳐져 있었다. 두 탑들은 거의 같은 높이에 있어, 가장 넓은 자연적인 절벽으로 연결되었다. 동쪽 탑 아래에는 거주 구획들에는 창문이 달려 있었다.
성의 복도에는 불이 잘 켜져 있지 않아 육, 칠 피트 간격으로 한 개의 초를 놓았다. 이러한 경우는 대강당의 문을 넘어 부엌으로 이어지는 창문 없는 구역들에서 특히 그러했다. 대강당 자체는 이백하고도 오십 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거대했으며 성의 내부 복도와 이어지는 세 곳의 작은 문들이 존재하였다. 다섯 곳의 창문은 중앙 출입구 위로 사다리 없이는 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일렬로 자리잡았다.
고탑
고탑의 아래에는 개방된 아치형 길과 함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놓여 있었다. 계단을 밝히는 양초는 없었고 탑의 좁은 창문들이 탑 내부로 간신히 빛을 비추었다. 좁은 계단은 작은 격자형 창문이 달린 출입구로 통했다. 문을 지나면, 좁은 통로에는 각자 튼튼한 빗장과 경비병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사람 눈 높이에 경첩 달린 정사각형의 구멍이 있는 두 곳의 문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이곳은 평민 계급 이상의 죄수들을 위한 곳으로, 이러한 방들은 의자와 탁자, 침대, 훌륭한 양초 공급 그리고 요강이 동반되었다.
지하감옥
고탑에 있는 것들과 달리 성의 지하에 있는 방들의 배치는 편자 모양과 같아, 직사각형의 구덩이 끄트머리들에 위치했다. 각 방들의 폭은 오 피트 정도로, 촛불은 구덩이 테두리 너머의 어둠을 뚫기에는 너무 약하였다. 성의 모든 폐기물들이 비일비재하게 구덩이로 쏟아졌고, 이후 따라 들어오는 물들로 서서히 쓸려 내려갔다. 그것들이 전부 지나가면 말할 수 있는 이는 거의 없지만 쥐의 울음소리와 쓰레기의 악취가 내부 사찰을 단념시키기에 충분했다. 경비병들이 죄수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쥐들에게 넘겨주는 건 아니었지만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며 거의 한 달도 버티지 못했다. 쥐들이 결국엔 빛을 한번도 보지 못한 괴물들에게 잡아 먹힌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만약 그런 소문이 사실이라도, 그 존재들은 쥐들보다 더 빠르지도 않은데다 구덩이의 벽들은 기어오르기 극도로 어려웠다.
지름이 육에서 칠 피트에 달하는 구덩이의 입구 너머에는 다른 감방들이 있는 돌출부가 위치했다. 각 방들은 한쪽 발목에 착용하는 쇠고랑과 조잡한 지푸라기 침대가 있었다. 방들 사이에 구덩이가 없으면 방은 얼추 십삼 피트 정도의 크기였고 반면 좁은 구덩이가 있는 방들은 구덩이 입구가 긴 것은 육에서 칠 피트, 짧은 것은 팔 피트 정도의 크기였다. 층은 편자 모양으로 세워져, 출입구는 중간 쯤에 위치했다. 죄수들에게는 빵과 양배추 잎, 나무 사발에 담긴 물로 구성된 간소한 식사가 제공되었다.
이 방들 중 여섯 곳은 각각 보초가 세워진 문으로 통하는 복도를 공유했다. 이 문 너머에 놓여있는 복도 끝의 또 다른 문은 성의 고문실로 통하였다. 그곳에서부터 계단은 두 주요 탑들보다 약간 낮은 성의 안뜰 중앙으로 이어졌다. 또한 그곳에는 오랜 세월 동안 완전히 녹슬어버린 자물쇠 두 개를 달고 있는 또 다른 작은 문이 있었는데, 이것은 산의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갔다. 그 통로는 넓었지만 성인이 다니기에는 충분히 높지 않았다. 분명 그곳은 인간들이 사라고스로 와 산 위에 성을 쌓기 오래 전부터 있던 곳으로 지하통로들은 드워프들이 구 세계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때 파낸 수많은 동굴들과 이어져 있었다. 바위산은 한때 드워프 제국의 쇠퇴에 앞서 드워프들이 고블린들에 맞서 지키고자 오랫동안 힘겹게 투쟁해온 성채였다.
최하층
이 아래로, 성의 쓰레기들이 모이는 하수구는 나선형으로 내려가면서 넓어졌다. 이는 항상 하수도 위로 이어지는 일련의 또 다른 통로들 중 일부였다. 그곳엔 두 개씩 결합된 여러 개의 구덩이들이 있었지만 이전에는 인간 -- 혹은 드워프 --가 성에서부터 아래쪽 경사에 있는 한 다스의 동굴들로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매우 주의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들이 처음으로 사라고스에 도착했을 때 이 주변에 들어선 집들이 지어졌지만 이미 많은 다리들이 붕괴된 이후였다. 하나 남은 연결로는 최후 킥사나 공작을 퇴위시킬 때 성을 공격하고자 쓰였지만 이 통로는 고의적으로 파괴되었고 산의 중심부로 향하는 길을 그렇게 봉인되었다. 드워프들과 달리 인간들은 불가피하게 지하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을 제외하곤 세계의 내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다.
아래로 내려가 주변을 둘러보면 마침내 지하통로의 줄기를 만나게 될 것이었다. 표식들이 부드럽고 하얀 돌로 벽들에 그려져 있었고, 그 표식들을 따라가면 가파른 비탈길 위에 있는 아치형의 좁은 통로로 이어졌다. 깊지는 않았지만 아래의 텅 빈 공간은 안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곳은 쥐들이 숨어 둥지를 트는 동안 다른 존재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기다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곳으로 떨어진다면 쥐들이 박살난 몸뚱아리로 빠르게 모여들 것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길 자체는 갑작스러운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 일백 년 넘게 지역의 중앙으로 이어져 있었고 바위 벽은 왼쪽으로 날카롭게 절단되어 있었지만 길은 그러하지 않았다. 그곳, 심연은 좁고 반대쪽 암벽은 고작 십오 피트 앞만 비출 수 있는 랜턴의 빛으로도 볼 수 있었다. 다른 쪽에서 아치형 길이 있고 또 다른 지하통로가 바위 산의 깊은 곳으로 통했지만 그곳의 통로는 붕괴되었으며 절벽길과 지하통로로 연결되는 다리는 파괴되어 구덩이 속으로 무너졌다.
만약 누군가 다른 방법으로 그 틈을 메우려고 한다면 그들은 아치 너머의 지하통로가 완만한 경사로 내려가다가 갑자기 가파르게 올라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었다. 계단은 없었지만 수직 통로의 벽들은 드워프 사용자들에게만 편안하도록 깔끔하게 파여있었다. 통로에는 분필로 표시한 흔적이 없었지만 어떠한 종류의 칼날로 베어 표시한 부분이 있었다. 그 길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통로가 넓어져 같은 크기의 자연적인 동굴로 향하는, 드워프가 만든 통로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자라는 버섯은 은빛을 내뿜어 천장까지 자라난 울퉁불퉁한 바닥에 모인 석순들을 비춰주었다. 이 석순 덩어리들 사이에는 때때로 밀어닥친 홍수로 인해 연해진 바위 무리들이 존재했다. 얕은 웅덩이들 또한 찾을 수 있었다.
동굴은 사라고스 성 지하 통로들 보다 훨씬 따뜻했다. 날개 달린 것들이 퍼덕이는 소리, 첨벙거리는 물소리 모두 침묵을 깨트렸지만 박쥐와 새가 바위에서 변을 보는 동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파충류의 노란 눈들이 좁은 틈들 사이에서 바라보았다. 만약 쥐들이 동굴에 있더라도 동굴은 지하 감옥의 구덩이와 같은 구조로 흘러갔기에 매우 적은 수만 있었을 것이었다.
돌의 숲 사이를 빠져나가며, 동굴 탐험가는 여전히 촛불보다는 희미하더라도 자신이 밟은 버섯의 빛이 더 밝아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 잎 없는 식물들은 고여있는 웅덩이나 석순들 근처에서 자라났다. 일부는 매우 작고, 어떤 것들은 둥글고 납작했지만 다른 것들은 셀 수 없이 많은 힘없는 팔이 솟아 나왔다. 또한 거대한 회색 민달팽이 같은 생물들이 식물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그 통로는 구불구불하고 대단히 복잡했다. 전에 지나간 탐험가들이 남겨둔 표식들은 야생 동물들이나 동굴 전체에 새어 들어오는 물에 침식되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흰 도마뱀들이 빛에 홀려 가만히 서있는 동안 쥐들은 허둥지둥 도망갔다. 박쥐나 참새류, 찌르레기와 같은 새들은 동굴에 있는 틈들이 외부와 이어져 있는데다 가까이 있다는 충분한 증거였다. 빽빽히 모인 뒤집힌 종유석의 숲 너머의 머리 위쪽 공간은 어떤 거대한 괴물의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바짝 죄어왔다. 버섯에서 내뿜는 불빛은 점차 희미해졌고 맞은편의 것과 합쳐진 종유석들은 거대한 기둥을 형성하여 마치 관문처럼 둘 씩 짝지어져 있었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직선으로 향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계란형의 눈과 하얀 털을 가진 유인원 같은 괴물들에 의해 습격을 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 긴 팔의 괴물들은 쥐나 새들을 잡아 먹었으며 발은 무언가를 붙잡거나 기어오르는데 능숙했다. 이들의 이빨은 단검과 같아 사냥감의 살을 뜯어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지만 긴 발톱을 지니고 있어 상대를 교살하려 하거나 쥐어 죽이는 것은 약한 편이었다. 그들은 기본적인 지능을 갖추고 있어 함정에 빠진 사냥감을 같이 사냥할 수는 있었지만 고블린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춤
공국들 중 가장 작은 나라임을 고려해도, 사라고스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비발리와 마그리타의 상류층만큼이나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부유한 군주와 가장 위대한 왕들처럼 춤을 출 수 있으며 자신들이 브라를레brarle와 파랑돌farandole을 출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실제로, 그들 공국의 약함이 척박한 땅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사라고스 통치자들의 자존심은 단사danza에서 나온 바요ballo를 아는데다 복잡한 변화에 대한 극복과 같은 그들의 매우 현대적인 능력으로 인해 높아졌다.
트리비아
■ 마르실리오 디아빌라 공작은 그의 흉포한 아버지, 루피노를 뛰어넘는 잔인함으로 알려졌다.
■ 마리실리오는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 아름다운 베로니케와 토마스였다.
■ 사라고스 내에는 법의 신들에게 바치는 성지가 없었다. 베레나에게 바치는 성지는 있었음에도 말이다.
■ 사라고스의 사회적 지위는 자신이 바위 산에서 얼마나 높은 곳에 사는지와 관련이 있었다.
■ 마리실리오 공작의 수석 조언가이자 마법사는 셈하사였다.
■ 전설에 의하면 사라고스 성은 고지대와 성이 서있는 바위들의 가파른 경사에서 오는 이점 때문에 절대 함락될 수 없다고 하였다. 일단 정의로운 자가 성채를 지배한다면, 통치는 절대적이며 난공불락이라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견고해 보이는 바위 산은 그 중심부가 부패했고 동굴과 구멍들로 가득 차 있었으며 민중들이 사는 곳은 아니었지만 절벽에 붙어있는 귀족 저택들 중 하나에는 성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가 있었다. 전해진 바에 의하면 그 집은 돈 로드리고 코르도바의 것이었다.
■ 페르난드 아리고는 성의 병사였다.
■ 사르고스 성 밖의 코르도바 사유지들은 읍에서부터 이라나 산맥의 산들로 직행하는 북쪽의 주 도로를 따라 위로 뻗어 있었다.
■ 사라고스는 척박한 토양에서 얇고 구부러지게 나무들만을 생산했기 때문에 목수들로 유명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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