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의 제국/속임수 썸네일형 리스트형 (속임수) 결론과 유산 오늘날의 탈라브하임 탈라브하임은 인간 제국의 특별한 도시이자 위대한 보루이다. 이 북적거리고 사람 가득한 장소는 거대한 분화구 내부에 건설되었다. 나는 내 여정 동안 여러 번 탈라브하임을 방문하여 자신들의 고향과 도시에 충실하며 자랑스러워하는 그곳의 국군State army들과 함께 전투에 나서는 기회를 가졌었다. 탈바스톤Taalbaston이라 알려진 분화구 성벽 밖에서부터, 침략군이 도시를 공격하는데 있어 끔찍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것은 꽤 명확하다. 분화구의 천연적인 산의 벽은 땅에서부터 높이 솟아있으며 수년간 도시의 방어자들은 정상에 방어용 구조물들을 설치해, 도시로부터 멀리 퍼져있는 방대한 숲은 내려다보는 감시탑들은 슈피레스트라세Spierrestrasse라 알려진, 분화구의 가장자리 전체를 통해.. 더보기 (속임수) 시가전, 그리고 패배 시가전. 탈라베클란트인들이 강을 건너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척후병 하나가 다가와 오틸리아에게 보고했다. 헬무트 바이서 장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척후병이 보고하기를, 호우가 북쪽으로 약 2마일 떨어진 강둑의 큰 부분을 씻고 내려가, 기병대가 건널 수 있을 만큼 넓고 얕은 여울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이 기회 속에서 나는 취해야 할 행동을 추천할 필요도 없었다. 여백작은 그 시점에서 즉시 흑장미 기사단을 포함한 기병대에게 강을 건너도록 명령하였다.' 오틸리아는 이 뜻밖의 행운을 이용하기 위해 훌륭히 행동했다. 장군은 이와 같은 기회들을 이용해야 한다. 저명하고 훌륭한 역사가 빌헬름 블레크Wilhelm Bleek가 그의 뛰어난 저작 폰 핑케 장군의 천재성Genius of General von Vinke에서.. 더보기 (속임수) 양동 작전 양동 작전. '우리는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슈티어란트인들은 우리를 수적으로 압도했고, 우리는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강을 건너야 했다. 견딜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울릭에게 축복받은 여백작께서는 훌륭한 발상을 지니고 있었다,' 헬무트 바이서 장군은 이렇게 증언했다. 다음 날 전투가 시작될 것이었다; 뒤돌아갈 순 없었다. 오틸리아는 자신의 병사들을 강 위에서 슈티어란트군의 화살과 창 속으로 밀어 넣는다면 승산이 없었기에 역사에 기록될, 한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가장 교활한 양동작전들 중 하나이자, 2515년 내가 헬로트Helot의 다리에서 거둔 대승(알트도르프 출판사의 '폰 핑케의 승리들'을 보라.)에서 모방할 전략을 고안해냈다. 새벽 4시 폭우가 내린 후, 그녀는 가능한 크게 소.. 더보기 (속임수) 양군의 배치 배치. 슈티어란트의 군대의 집결은 느렸지만 그 진격은 신속했고 오틸리아는 자신의 땅에 침입한 그들의 속도에 놀랐다. 굳게 얼어있는 땅 위에서 행렬은 놀랍게도 매일 이십 마일씩 진군했다(변경후맹에서의 전역 동안 내 병사들은 더 어려운 환경에서 매일 이십 삼 마일씩 진군하긴 했지만 말이다). 중춘이 되었을 때 쯤, 슈티어란트 군대는 탈라브하임으로부터 고작 팔 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오틸리아가 자신의 군대를 모으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동안, 슈티어란트는 강 동쪽에 야영지를 세우고 대기했다. 이 전투는 탈라베크 전투Battle of the Talabec로 불리게 될 것이었지만 사실 전투가 벌어진 장소는 탈라스탐Talastamm 강으로부터 북쪽으로 3마일 떨어진 좁은 지류에서 벌어졌다. 편의를 위해, 그.. 더보기 (속임수) 슈티어란트 군대와 탈라베클란트 군대 슈티어란트 군대. 이 시기 동안 만들어진 기록들은 드물지만 다행히도 후세를 위하여 슈티어란트 백작은 개인적인 일기를 남겨두었고, 공들여 철저하게 만들어진 그 속에는 백작의 군대의 구성에 대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슈티어란트는 강력하고 잘 균형된 군대를 모으는데 시간을 소비했고 봄까지 군대는 창병대 8,000명, 검병대 4,000명, 그리고 수백이 쇠뇌로 무장한 2,000명의 원거리 보병대로 구성되었다. 그의 주력은 기병대로, 일백 명의 지그마의 피 기사단Knights of Sigmar's Blood - 황제의 무기 중 최고들 - 을 포함한 삼백 명의 중기병대와 그들보다는 덜 알려지고 더 비밀스러운 일천 명의 기사단들을 배치하였다. 슈티어란트 백작은 전부 합해서 만 오천여명의 병력을 자신의 지휘 아래 두.. 더보기 (속임수) 내전과 첫 행동들 내전. 1360년 제국은 수백 년 동안 이어질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빠져들었다. 제국은 여전히 어리고 미숙했으며 지그마의 치세 이전에 만연했던 경쟁 부족 간의 분쟁은 반갑지 않게도 되살아났다. 이러한 불안의 원인은 제위를 향한 백작들 사이의 욕구였다. 권력과 그것을 추구하는 부패한 사람들 그리고 전쟁은 보통 연속적인 것이었다. 전년 말에 투표가 개시되었고 슈티어란트Sitrland의 선제후 - 강력한 권력자이자 영악한 정치인 - 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게 되었다. 그의 가장 가까운 경쟁자였던 탈라베클란트Talabecland의 오틸리아Ottilia - 야심적이며 두려움을 모르는 여성 - 는 전 궁중 앞에서 뇌물 수수와 유리한 결과를 얻게 해준 선거 의회와의 관련성에 관해 백작을 비난하였다. 감탄스러울 정도의.. 더보기 이전 1 다음